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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지폐의인물설명......역사속인물...

비공개 | 2008-03-24 01:29 | 조회 0 | 답변 1

우리나라지폐의인물설명, 역사속중요한인물설명,유명한전래동화같으거 외국인에게설명할려고합니다.

 

정확하게 체계적으로 설명하기위해서 A4상당에 자료가 자료가 필요해서요,..

설명할 자료를 프린트해야하거든요...간단하고자세하게 중국인에게 설명할려고합니다.

난감해서요...어떻게 할지....

조금 정리해서 설명좀 해주시면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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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분야 : 한자,한문 | 절약,알뜰살림
본인소개 : 슬기학원 운영,청소년 상담및,한자교육 논술교육 전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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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에 쓰인 언어

화폐에 표기되는 언어는 단일 또는 다수언어 국가인지 여부, 세계 시장에서의 유통력등을 고려하여 정하고 있다. 다민족 국가의 경우에는 소수민족의 편의를 위하여 각 민족언어도 함께 화폐에 표기하고 있다. 또한 세계경제시장에서의 유통을 위하여 국제어인 영어나 프랑스어를 병기하기도 한다. 단일 언어로 표기하는 화폐로는 미국의 달러, 영국의 파운드, 프랑스의 프랑, 독일의 마르

크등 경제대국의 화폐외에 러시아, 북한등의 화폐가 해당된다. 이들 나라는 자국어만을 사용하고 있다.2개 언어로 표기하는 화폐로는 우리나라(앞면 한글, 뒷면 영어로 액면(WON)과 발권 기관 명칭(THE BANK OF KOREA)), 캐나다(영어와 프랑스어), 홍콩(영어와 한자), 일본(영어와 한자)등의 화폐가 해당된다. 우리나라 화폐의 경우 초기에는 한자와 영어만으로 표기하였으나 1953년 2월에 발행한 천원권에서부터 한글표기가 병행하여 3개언어로 나타냈다가 1960년 8월에 발행한 천환권부터는 한자가 사라지고 현재 유통되고 있는 바와 같이 한글과 영어 2개언어로 표기하고 있다. 일본은 자국어로 표기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스위스(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레토로만어)와 싱가포르(말레이어, 중국어, 타미르어, 영어)의 화폐는 4개 언어로 표기하고 있다. 7백개 이상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는 인도는 대표적인 15개언어를 화폐에 표기하고 있다. 공용어인 힌두어와 영어외에 시성 타고르가 사용한 벵갈리어를 포함한 13개 지방 공용어를 함께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한글만을 쓰고 있다.

화폐 수집

화폐수집은 재미있는 취미생활이나 연구활동도 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돈벌이 수단도 될 수 있다. 취미생활을 위한 화폐수집은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우선 나라별로 현용 화폐물 지폐와 주화로 나누어 수집하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다음으로 주제별로(건축물·동식물·인물등) 수집하는 것이 발행국의 역사와 문화, 국민정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 화폐를 수집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고화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고화폐는 특히 이재(理財)의 수단으로 많이들 생각하고 있어 몇가지 도움말을 주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고화폐는 오래될수록 비싸게 거래되는 것은 아니다.「회소성」과 「보존상태」에 따라 값이 매겨지는 것이다. 아무리 오래된 고화폐라 하여도 희귀하지 않으면 시장의 원리상 비싸게 거래될 리가 없고, 또 보존상태가 나쁘면 동종의 화폐라도 값차이가 많이 나게 된다.

고려시대의 건원중보는 1983년에 2백50만원에 거래되었는데, 현재는 억대를 호가한다. 동국중보, 동국통보, 해동원보, 해동통보, 삼한통보, 삼한중보는 1백만∼2백만원에 거래된다. 조선시대의 조선통보(소형)는 20만원 정도에, 십전통보(대형)는 75만 ∼1백50만원에 거래 된다. 상평통보는 3천종이상이 발행되어 값도 다양하다. 소장량이 많아 대부분 20만원 미만에 거래된다. 구한말에 발행된 화폐는 고화폐 가운데 가장 비싼 값으로 거래되고 있다. 대동전은 근대식 화폐의 형태를 갖추었고 은을 주소재로 하였기 때문에 40만∼1백20만원 가량한다.

 

화폐의 단위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화폐 단위 명칭은 '원'이다. '원'은 1962년 6월 제3차 통화조치 때 채택한 이래 우리나라 돈의 기본단위로 되어 있다. 보조단위는 '전'인데 100전이 1원이다. 인플레이션으로 화폐의 구매력이 떨어진 1970연대 이래 '전'단위 화폐는 발행이 중지되고 있고 단지 회계처리 단위로만 쓰인다.근대 화폐가 확립된 이후 우리 나라 돈의 단위는 '원-원(圓)-환'등으로 변천되었다. '원'은 우리 나라에 근대식 화폐제도를 도입한 후 경성전환국 때(1886년) 의 주화에서 처음 쓰인 단위이다.

'원(圓)은 구한말 일본제일은행권의 국내 통용(1902년)이래 쓰인 단위로, 해방 이후 최초의 한국은행권(1950년 7월)에서도 쓰였다.'환'은 해방 이후 1953년 2월 제2차 통화조치 때부터 통용된 단위이다. 그런데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은 앞서 전환국 시절 쓰기 시작한 화폐 단위는 한자로 '원'을 '환'으로 발음하도록 하여 종전 '원(圓)'과 발음상의 혼란을 방지하고자 하였다는 점이다. 원래 '원'은 '둥글다'는 뜻으로는 '원', '돈다'는 뜻으로는 '환'으로 발음된다.

지금의 '원'은 순수한 한글 이름인데 옛 화폐 단위인 圓이나 '원'에서 소리와 뜻을 취한 것으로, 동전의 모양이 둥근 데서 따온 것이라 본다. '원'의 영자 표기는 'WON'이고, 기호는 이다. 경성전환국 시절(1886년)의 주화에는 '원'을 'WARN'으로 표기한 재미있는 예도 있다. 보조단위 '전'은 錢에서 유래한다. 영자로는 'JEON'인데 용산전환국 주화(1902년)에서는 'CHON'으로 표기하였다.

기념주화

기념주화는 국가적 행사나 역사적 인물을 기념하거나 또는 특정 사업의 홍보를 위하여 특별히 발행한다. 고도의 예술적 품위를 지닌 디자인으로 꾸민다는 점과 대개는 고가의 소재로 만든다는 점이 일반주화와는 다르다.역사상 최초의 기념주화는 기원전 479년의 시라큐스 전승 기념주화라고 한다. 우리 나라는 지금까지 아홉차례에 걸쳐 기념주화를 발행하였다.

최초의 것은 대한민국 반만년 영광사 기념주화(1970년)인데, 우리 공사가 처음으로 만든 것은 광복30주년 기념주화(1975년)이다. 제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 기념주화(1978년)는 발권기관인 '한국은행'이 아닌 '대한민국'이 표기되어 논란이 있었다. 대한민국 제5공화국 기념주화(1981년)는 그 발행 의의가 모호했다. 제24회 올림픽대회 유치 기념주화(1982년 및 1983년)는 프리미엄을 붙여 판매한 첫 기념주화이다. 천주교 전래200주년 기념주화(1984년)의 발행은 교황 바오로 2세의 방한을 더욱 뜻깊게 하였다. 이후에도 제10회 아시아 경기대회 기념주화(1986년),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 기념주화(1988년), '93 대전세계박람회 기념주화(1993년)를 발행하였다.

기념주화는 화폐 수집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소장하려고 하기 때문에 기념사업 자금을 조성하는 데 있어 아주 큰 기여를 한다. 기념주화 발행 때마다 프리미엄을 붙여(천주교 전래 기념주화는 예외) 판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대 기념주화 판매 상황을 보면아시아 경기대회 기념주화까지는 93%를 웃도는 판매율을 보였으나 그 이후 서울올림픽대회 기념주화(74.1%)와 대전세계박람회 기념주화(78.2%)는 과다하게 발행한 탓으로 아주 낮은 판매율을 보였다. 기념주화 발행의 성공의 발행의 역사성, 디자인의 예술성, 수량의 적정성 등 삼박자가 갖추어져야 가능한 것이다.

최고액 화폐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화폐중에서 액면 금액이 가장 높은 것은 만원짜리 은행권이다. 화폐의 액면 금액은 경제규모의 확대와 인플레이션에 따라 커져가기 마련이다. 현재 경기침체 속에서 만원짜리보다 고액의 은행권(십만원권)을 발행하여 소비를 부추겨보자는 주장을 둘러싸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거래의 간편과 화폐 발행 비용의 절약을 위해서 최고액권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한편 인플레이션 심리를 부추긴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입장이 있기도 하다.인플레이션에 맞춰 천문학적인 최고액권을 발행한 사례로 제1차 세계대전 패전 후의 독일의 경우가 있다. 1924년 독일은 1백조(兆) 마르크짜리를 발행하였는데 이것이 역사상 최고액의 화폐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마르크와 달러의 교환비율이 1조 마르크 대 1달러였다.

빵 1kg에 5200억 마르크였다. 지폐는 종이보다 가치가 떨어져, 지폐를 도배 벽지로 사용하였다. 시장에서 할머니가 돈바구니를 땅바닥에 내려놓고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도둑이 돈은 그냥 두고 낡은 바구니만 훔쳐갔다는 실화가 있다. 주정뱅이 형이 쌓아놓은 빈 술병은 나중에 돈 가치가 꽤 되었지만, 근검절약한 동생이 알뜰살뜰 저축해둔 돈은 휴지 조각으로 변했다는 얘기 역시 이 시대에 나온 얘기이다.

현재 세계 각국의 최고액권을 살펴보면, 미국이 1백달러(13만 8천원), 영국이 50파운드(11만 8천원), 독일이 1천마르크(83만원), 프랑스가 5백프랑(12만 3천원), 일본이 1만엔(10만 2천원)짜리를 실제 통용되는 최고액권으로 가지고 있다.

 

화폐위조의 역사

화폐위조는 화폐제조 역사와 함께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금속화폐가 등장한 것이 기원전 650년쯤인데, 기록상 최초의 화폐위조범은 기원전 540년 무렵에 나타난 것을 보아도 짐작이 간다. 조폐기관과 위조범과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조폐기술은 위폐범과의 싸움 속에서 발전된다거나, 조폐 역사는 위폐범과의 투쟁의 역사라 하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

인간이 불로소득과 일확천금의 꿈을 버리지 않는 한 앞으로도 화폐 위조는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이고, 이를 막기 위한 기발한 아이디어나 첨단 조폐 기술의 개발 역시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다. 우리 나라의 화폐 위조 발생 현황을 보면, 1995년에 5건(5장), 1996년에 8건(28장), 1997년에 23건(1,131장)으로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이다. 천연색 복사, 실크 스크린 등 위협적인 위조 수법이 출현하고 있는데 이에 대항하는 우리공사의 기술은 고심도 요판인쇄, 컴퓨터 그래픽, 특수 형광이나 적외선 잉크, 입체 은화 등의 개발에서 뛰어난 성과를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중세 중국에서는 위폐 근절을 위하여 전국의 뛰어난 위조범을 조폐기관 직원으로 특채하기도 했고, 12세기 영국의 헨리 1세는 위폐가 성행하자 조폐기관 직원에 혐의를 두고는 직원 백여명의 손목을 자른 일도 있다.화폐 위조는 집단적, 국제적으로도 자행된다. 이 경우는 상대의 사회적, 경제적 파멸을 일으키려는 의도하에 일으키는 것이 많다.

우리 나라의 경우 조선정판사 사건이 유명하다. 외국의 사례를 보자. 독일 나치스는 제 2차 세계대전 중 적국인 영국의 파운드 위조계획을 세우고 베를린 근교에 위폐공장을 차렸다.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포로 중 인쇄기술자를 동원하여 만들어낸 위폐는 진품과 구별이 안될 정도로 정밀하였다. 2년여 기간이나 이 위폐가 통용되다가 발각이 되었으니 그 동안의 피해가 막심하였다. 영국은 할 수 없이 새로운 도안의 파운드를 발행하게 되었다.

화폐의 종류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화폐(법화)는 몇 가지 종류가 있는가? 은행권 3종(천원, 오천원, 만원), 주화 6종(일원, 오원, 십원, 오십원, 백원, 오백원) 등 모두 9종이라고 답하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사실 현재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는 돈은 이 9종이기 때문이다.그러나, 법적인 통용력을 가지고 있는 화폐는 생각보다는 훨씬 종류가 많다. 화폐는 통화정책이나 화폐문화의 변천 또는 조폐기술상의 필요에 따라 새로운 것을 발행할 수도 있고, 기존의 것의 발행을 정지할 수도 있다. 액면 표시 금액이 전혀 다른 화폐를 발행할 수도 있고, 액면 표시 금액이 같더라도 디자인이나 크기 또는 기술요소가 다른 종류의 돈을 발행할 수도 있다.

그런데 기존의 화폐의 발행을 정지하는 경우, 종전에 발행된 화폐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가? 화폐로서의 효력을 잃는 것이 아니다. 계속 통용력을 가지고, 새로 발행된 화폐와 함께 시중에서 유통하게 된다. 일단 발행된 화폐는 특별한 법적인 근거가 없이는 통용력을 잃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1962년에 발행된 오백원, 백원, 오십원, 십원, 오원, 일원, 오십전, 십전짜리 은행권도, 지금은 발행이 정지되어 있지만 엄연한 법화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동일 액면의 화폐라도 세월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 종류로 늘어나게 마련이다. 만원짜리가 4종류, 오천원· 오백원·백원짜리가 각각 3종류씩이나 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현재 법적인 통용력을 가지고 있는 화폐는 모두 106가지가 된다. 은행권이 23종, 일반주화가 14종, 기념주화가 69종이다.오래 전에 발행이 정지되어 아주 생소하되, 화폐로서 계속 효력이 있는 것을 '돈이 아닌데 돈처럼 생긴 이상한 것'이라고 말하거나, 기념주화는 집에 간직하여 두고 보기만 하는 것이지 물건을 살 수는 없다고 말하는 어느 천진한 어린이의 모습이, 통용력을 가지는 화폐인지 아닌지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재미있는 사례로 생각난다.

주화의 테두리

인류가 물품화폐 시대를 지나 처음으로 금속화폐의 재료는 금과 은이었다. 그 훨씬 이전에 청동기 시대를 연 인류가, 견고하여 아주 쓸모가 많은 청동을 화폐의 재료로 쓰지 않고 금,은을 사용한 것은 아마도 고대 천문학과 점성술의 영향 때문이라 보인다. 금은 태양신, 은은 달의 여신을 상징한다고 믿었다.이때 화폐의 재료로 사용된 금이나 은은 화폐의 실제 가치와 똑같았다. 그러자 불로소득을 노리는 사람들이 주화의 가장자리를 몰래 깍아내어 이득을 보려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다. 오늘날 주화의 가장자리에 깔쭉깔쭉한 톱니모양을 새겨놓고 있는 것은 이러한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고안한 역사적 산물이다. 톱니가 없는 돈은 사람들이 받지 않게 되기 때문에 주화 가장자리를 깍아내는 짓을 방지하는데 큰 효과를 보게 된 것이다.

오늘날에는 일반 통용 주화로 금화나 은화를 제조하는 경우는 없으므로 톱니를 고안하게된 당초의 뜻은 사라지고 다만, 모양을 멋지게 꾸며 주화의 품위를 높이려는 현대적 의미는 있다.현재 주화에 사용되고 있는 옆테두리 형태로는 평면형, 고대식인 톱니바퀴형, 문자형, 무늬형등이 있다. 우리나라 주화로서 테두리에 아무것도 넣지 않은 평면형은 십원, 오원, 일원짜리가, 톱니바퀴형은 오백원, 백원, 오십원짜리 주화가 해당된다. 그런데 이 톱니바퀴의 수는 주화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오백원짜리는 120개, 백원짜리는 110개, 오십원짜리는 109개의 톱니가 있다. 문자형은 테두리에 문자를 넣는 형태로, 주화 제조의 꽃이라고 할만큼 고난도의 정교한 기술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 조폐공사는 이의 개발에 성공한 바 있다.

지난 1993년에 발행한 대전엑스포기념주화가 그것이다. 쓰인 문구는 "THE TAAEJON INTERNATIONAL EXPOSITION, KOREA 1993"이다. 문자형이나 무늬형은, 기념주화의 경우 품위 향상과 변조 방지를 위한 아주 쓸모있는 형태라 할 것이다.

독특한 형태를 지닌 은병화폐

옛날 금속화폐들을 접하다 보면 화폐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형태가 특이한 화폐들이 많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중국의 농기구와 칼 모양을 본떠 만든 포전(布錢)과 도전(刀錢), 말발굽처럼 생긴 마제은(馬蹄銀), 일본의 타원형을 가진 정은(丁銀), 우리나라 은병(銀甁) 등을 꼽을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은병(銀甁)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일명 활구( 口)라고도 불리는 이 은병(銀甁)화폐는 우리나라 지형(地形)을 본따서 병(甁)의 형태로 주조한 것인데 그동안 2종류가 발행·유통된 것으로 전해진다. 하나는 1101년(고려 肅宗 6년)에 발행된 대은병(大銀甁)이고, 다른 하나는 1331년(고려 忠惠王 元年)에 발행된 소은병(小銀甁)이다.

대은병이 처음 화폐로 사용될 때는 은 1斤(16兩)으로 주조하였으나 은의 공급량이 은병의 제조수요에 미치지 못했고, 한편으로는 조정에서 주조이익을 얻고자 1105년에 은의 함량을 줄여 은 12.5兩, 동 2.5兩을 혼합하여 주조하였다. 그러나 대은병이 발행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동을 많이 함유시켜 위조한 대은병이 유통되기 시작하였다. 위조된 대은병의 유통과 함께 대은병의 가치도 계속 하락하여 화폐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됨으로써 1331년에 유통을 금지시켰다. 그 대신에 대은병보다 크기를 작게하

고 은의 함량을 높인 소은병(小銀甁)을 발행하였는데 소은병도 시일이 지남에 따라 銀甁인지 銅甁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질이 나쁜 악화로 변질되어 1408년(조선 太宗 8년)에 유통을 금지시켰다. 이와같은 은병은 처음 등장한 이후 약 300년동안이나 유통되었으며 한국 화폐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은병 1개의 화폐가치는 어느정도였을까? 1282년(忠烈王 8년)에 공표한 바에 의하면 대은병 1개에 개성에서는 쌀 15∼16石, 지방에서는 쌀 18∼19石으로 정하고 매년 京市署(상행위를 감시하고 물가를 조절하는 기관)에서 그해 농사의 豊凶에 따라 가치를 조절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은병의 가치는 유통시기와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었던 것으

로 보인다. 그리고 소은병은 대은병보다 크기는 작아졌지만 은의 함량을 높였기 때문에 교환가치는 50%정도 더 높았다고 한다. 이와같이 은병의 화폐가치가 높은점을 감안할 때 은병은 대부분 국제무역 등 대규모 거래와 고관·지주들 사이에서만 사용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한편 은병의 실물의 경우 대은병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현재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는 은병은 소은병으로서 정확한 제조시기는 알 수 없으나 금속소재와 색채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고려말엽에 발행되어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금속화폐중에서 은병화폐에 더욱 애착이 가는 것은 현재 우리나라에 실물이 단 1개 밖에 없다는 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화폐모양이 한국적인 정서를 많이 담고 있는데서 찾고 싶다.

주화의 품위 등급

화폐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도안소재의 채택과 함께 그 이미지 등의 예술성을 살리기 위한 정교한 조각과 인쇄기술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화폐는 정교한 종합적 예술품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일반적인 화폐의 특성에 더하여 주화에는 추가적 기술적 처리가 따른다. 이 기술적 처리의 차이에 따라 주화는 프루프(Proof) 주화와 UNC(Uncirculated) 주화로 구분된다.

이중 프루프 주화는 기념·수집가용으로 제작되는 것으로 특수 가공 처리한 소재와 각별히 정교하게 제작된 극인(극인 : 주화를 압인하기 위한 음각 금속원판)을 사용하고 여러번의 압인과정을 거침으로써 글자나 도안을 완전 무결하게 구현한 최고 품위의 주화를 말한다. 아울러 프루프 주화는 제조에서 포장에 이르는 모든 제조 공정에서 한개 한개 조심스럽게 취급함으로써 주화간 부딪쳐 생길 수 있는 미세한 긁힘도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그리고 프루프 주화는 광택의 유무에 따라 유광과 무광으로 구분되는데 유광은 양각(볼록부분)이나 음각 부분의 구분없이 전체를 광택이 나도록 하는데 반해 무광은 양각 혹은 음각 부분중 어느 한 부분을 무광택으로 처리함으로써 도안의 선명도와 품위를 더욱 높인 주화를 말한다.한편 UNC(Uncirculated) 주화는 일반적 유통을 목적으로 제조된 것이지만 유통(발행)되

기 이전 즉 제조 직후의 광택을 거의 잃지 않고 전혀 변색이 없는 상태의 주화를 지칭한다. 참고로 설명하면 유통된 주화도 그 상태에 따라 UNC화보다 품질상태가 떨어지는 주화를 준UNC(About Uncirculated)라 하고 그 다음으로 극미품(Extra Fine), 미품(Very Fine), 보통 품(Fine) 등의 순으로 구분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프루프 주화는 1970년 외국에서 제조되어 발행된「대한민국 반만년 역사 기념주화」를 꼽을 수 있으나 우리나라 자체 기술에 의해 제조된 최초의 프루프 주화는 1975년에 발행된「광복 30주년 기념 100원화」로 총 500만장중에서 2천장이 프루프로 제조되었다. 1995년에 발행된 「광복 50주년 기념 10,000원화」의 프루프와 UNC 주화를 비교하면서 주화의 품위 등급을 확인하여 보자.

화폐가 만들어지는 방법

한국은행은 새로운 화폐를 발행하려 할 경우 우선 실무적으로 일반국민들의 여론 등을 기초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화폐의 도안, 규격 등 기본사항을 정하며 이어서 법적 절차로 한국은행법 규정에 따라 정부승인과 금융통화위원회의 의결과정을 거침으로써 새 화폐의 모습을 최종 확정한다. 그리고 이를 기초로 한국조폐공사에서는 인쇄판을 제작하는 등 여러 준비과정을 거친 후 실제 화폐를 인쇄하게 되는 데 적어도 화폐의 도안결정에서부터 최종적으로 화폐가 태어나는 데는 1년 6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그러나 이미 유통중인 화폐는 인쇄기간만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긴 기간이 소요되지는 않는다.그런데 이와 같은 여러 준비과정을 거쳐 탄생하는 화폐는 그 자체가 회화·조각의 미적 감각과 정교한 인쇄기술이 결합된 정교한 종합예술품이며 디자인, 제지, 잉크, 인쇄 분야에 서의 최고 기술이 적용된다.

그러면 종합 예술품인 화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화폐의 도안소재로 결정된 인물초상 등을 인쇄판에 담기 위해서는 밑그림 스케치, 도안설계의 회화적 작업이 진행되고 이어서 이를 금속판에 새기는 조각작업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와 병행하여 도안설계에 첨단의 컴퓨터 그래픽 기술도 가미되며 위조를 막기 위한 첨단 위조방지장치의 모양과 위치도 함께 고려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 각종 인쇄판은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인쇄기에 설치되어 1단계로 은행권의 문양 등 바탕무늬가, 2단계로 세종대왕, 경회루와 같은 주도안소재가 그리고 3단계로 은행권의 기호와 번호, 인장(총재의 인)이 인쇄된다.

한편 이러한 인쇄과정에 앞서 은행권 인쇄용지도 한국조폐공사에서 만들어지는데 그 용지는 펄프로 만들어지는 일반 종이와는 다르게 100% 면으로 만들어지며 위조방지요소인 숨은그림과 부분노출은선도 삽입된다.이와 같이 화폐 제조에는 여러 첨단기술과 용지·잉크·인쇄장치의 최적 조합을 빚어내는 정밀함이 요구되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자기나라의 은행권을 자국 인쇄시설에 의해 제조하는 국가는 40여개국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나라와 같이 은행권 인쇄는 물론 인쇄용지를 자체 해결하는 국가는 20여개국에 불과한 실정이다.

참고로 한 나라의 화폐는 그 나라의 정서와 기술에 의해 표현되어야 한다는 점을 일깨우는 일화가 있다. 즉 1972년 오천원권이 처음 도입될 당시 전문적인 화폐 조각가의 부재 등 현실적인 제약으로 불가피하게 오천원권의 조각 인쇄판을 영국 민간 화폐제조회사(Thomas De La Rue)에 의뢰하였는데 이 때 만든 율곡 이이 초상이 우리 동양인의 콧날보다는 서양인의 콧날과 유사하게 표현됨으로써 율곡 선생의 모습이 서양인의 얼굴과 흡사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따라 1977년에는 정부의 심의를 받은 율곡 선생의 표준영정을 근거로 만든 조각 인쇄판으로 5,000원권을 새로 제작하여 사용하였으며 1983년에는 또 다시 도안을 일부 변경하고 규격을 축소한 5,000원권을 제작·발행하여 현재까지 사용해오고 있다.

알 수 없는 화폐발명자

오늘날과 같은 화폐의 역할과 모습은 아니더라도 처음으로 물건의 거래를 용이하게 하는 "화폐"를 창안한 사람은 누구일까? 화폐가 불, 수레바퀴와 더불어 인류역사상 3대 발명품의 하나로 불리는 것에 비하면 바로 그 발명자가 누구인지 분명히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 "화폐"의 기원에 대한 갖가지 설을 남긴 것 같다. 즉 동양에서 사용되었던 "화폐"의 명칭을 보면 중국 주·한대(周·漢代) 에 사용되었던 칼 모양의 화폐인 도전(刀錢)에서 유래되었다는 도(刀), 포(布)가 화폐로 사용되던 때에는 샘처럼 막힘없이 유통된다는 뜻에서의 천포(泉布), 비단이 화폐로 사용되면서 등장하였던 백(帛), 금이 본위화폐로 사용되기 시작한 근대에 나타났던 금(金) 등 갖가지 명칭이 있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돈"이라는 명칭과 관련해서는 고려말까지 화폐를 의미했던 "도(刀)"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화폐 순환사상에 근거를 둔 "돈은 돌고 돈다"는 말에서 나왔다는 설도 전해져 왔다.

이처럼 "화폐"와 관련한 무성한 "설"이 전해지고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화폐는 모든 거래의 필수적 수단임에 따라 물건의 교환이 필요한 때가 되면 거래의 편리를 추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폐의 역할을 수행하는 "물건"을 자연스럽게 정하게 되었으며 그 물건으로부터 화폐의 기원이 시작되었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얼마 전 어느 지방신문은 ´흔히 사람들은 돈은 돌고 돈다고 하여 이것이 마치 돈의 유래인 양 생각하고 있는데 사실은 그렇치 않고 도(刀)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맞다´는 내용의 글을 싣기도 하였다. 그러나 옛날, 이름도 알 수 없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물건 교환동기에 의하여 자연발생적으로 신비롭게 창안된 화폐를 하나의 "설"로 가두는 것은 화폐의 역사를 지나치게 과소 평가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오늘날 화폐 발행기관으로서 특별한 역할을 부여받은 중앙은행이 탄생된 배경은 모든 사람이 화폐를 필요로 하여 옛날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화폐를 발명하고자 하는 욕구를 갖고 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솜으로 만드는 은행권

은행권 용지의 원료는 솜이다. 은행권 외의 우리 공사 제품(수표 등)이나 일상 늘 쓰는 종이(책·공책 등)의 원료가 나무 펄프링 것과는 다르다. 은행권 용지는 정교한 인쇄에 적합한 지질을 가져야 하고, 특수 색소 같은 위변조방지 요소를 담아낼 수 있어야 할뿐더러 숱한 사람들 손을 거쳐도 땀이나 물기에 헤지지 않을 만큼 질겨야 하고, 웬만한 화공약품에는 견딜수 있어야 하는 등의 품질을 갖추어야 한다. 이런 요건을 갖춘 원료로는 솜이 제격인 것이다.

이 솜은 방적공장에서 나오는 찌꺼기 솜(낙면)이다. 이것을 오랜 시간 물에 불려서 부드럽게 만든 뒤 색깔과 냄새를 없애어 원료로 쓰는 것이다. 은행권의 수명은 용지에 달려 있다. 접었다 폈다 하는데 견디는 정도(횟수)는, 우리 나라 은행권이 5500회, 미국 달러는 4000회, 독일 마르크가 3300회, 일본 엔이 1500회, 영국 파운드가 1000회이다. 또, 어느 정도의 무게로 잡아 당길 때까지 안찢어지는가를 살표보면 우리 은행권이 10kg, 달러가 13kg, 엔이 8kg 정도이다.

은행권 용지의 두께는 얇을수록 좋은데 변조를 막는 데도그렇다. 즉 은행권의 앞면과 뒷면을 떼어내는(박리) 변조 수법은 용지의 두께가 얇을수록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얇게 해도 종이가 15개 이상의 섬유층으로 이루어진 이상 박리 변조를 막는 것은 아주 어렵다. 우리 나라 은행권 용지의 두께는 0.11mm,달러는 0.12mm, 프랑이 0.07mm인데 어느 나라에서든 박리 변조 현상이 발견되고 있다.

엽전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엽전(葉錢)은 조선시대 조선통보, 상평통보 등과 같이 겉은 둥근 모양을 하고 중앙에는 사각형의 구멍을 가진 근대 (近代) 이전의 주화를 통칭하는 것이다. 鑄貨의 製造史 側面에서 근대(近代)란 어느 특정시기라고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지만 조선말기 고종 재위시 鑄貨製造 방식이 주조(鑄造, 놋쇠 등의 금속을 녹여 형틀에 부어 무늬를 만듬)에서 오늘날과 같은 압인(壓印, 형태가 새겨진 금속틀을 주화 소전에 압력을 가하여 무늬를 새김)으로 변경된 시기로서 이 때부터 주화의 가운데 사각형 구멍도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처럼 근대이전의 주화형태를 엽전(葉錢)으로 부르게 된 것도 주화 시대구분의 한 기준이 되는 주조과정에서 유래하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즉 주물의 형틀인 거푸집이 나뭇가지에 여러 개의 잎이 이어져 달린 모양을 하고 있으며 거푸집 한쪽에서 주물을 부으면 각 잎모양의 형틀로 주물이 흘러가게 되고 이것이 굳으면 전체적인 모양이 나무가지에 매달린 잎처럼 보여 엽전(葉錢)이라 불렀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 사이에서 "엽전"이라는 말이 우리 민족을 폄하하여 부르거나 보수적이고 융통성 없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을 비하하여 부르는 의미로 쓰이고 있는데 엽전 모양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알면 그러한 사용이 크게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아주 오래전에 중국 진시황제가 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남)의 우주관을 담아 圓形方孔(겉은 둥근 원형에 각진 구멍)으로 동양 주화의 모양을 정립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고려 숙종때 의천(義天)은 동전의 모양이 圓形方孔인 것은 '겉의 둥근 하늘이 만물을 덮고 네모난 땅이 받치는 이치'라고 설파하였으며 조선시대 대표적 엽전인 常平通寶는 그 의미가 '떳떳이 평등하게(常平) 널리 통용되는 보배(通寶)'였다.

이러한 역사적 기록과 의미로 보건 데 엽전이라는 용어가 비하적으로 사용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쁜 의미로 쓰여 온 것은 조선말기 왕실재정의 궁핍 등으로 궁궐과 여러 관청에서 상평통보 등 엽전의 주조가 남발됨은 물론 일반 개인들까지도 엽전을 비밀리에 주조함에 따라 당시 화폐질서가 극도로 문란해진데다 개항 이후 외국 주화의 유입 등으로 엽전의 가치가 보잘 것 없이 떨어지면서 엽전에 대한 불신이 컸던데 그 배경이 있는 듯하다. 여기에다 일제(日帝)가 식민통치의 일환으로 가치가 보잘 것 없게 된 엽전을 우리 민족을 비하하는 뜻으로 둔갑시켜 사용하였는데 이 왜곡이 그대로 유지되어 왔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엽전에 내포된 본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앞으로는 이를 비하적으로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의 최초의 동전, 해동통보

주화는 일반인들 사이에 흔 동전(銅錢)으로 불리워지나 엄밀한 의미에서 모든 주화가 동전은 아니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동전(銅錢)은 구리나 구리의 합금으로 만든 주화를 통칭하는 말로 정의하고 있어 이를 따를 경우 우리나라의 현용 주화중 구리가 섞이지 않고 100%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1원화 동전으로 보기 어렵다는 얘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전적(辭典的) 의미에도 불구하고 주화를 "동전"으로 자연스럽게 부르면서도 유독 기념주화의 경우에는 "기념동전"으로 부르는 예를 찾기 힘든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아마도 기념주화의 주소재가 금, 은 속인 경우가 많아 "동전"이라는 용어를 쓰면 그 가치가 손상된다는 느낌을 갖게 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와 비슷하게 주화의 형태를 최초의 주화인 고려시대 건원중보(乾元重寶)부터 둥근 모양으로 사용하여 온 우리 국민들은 주화의 모양 원형을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을 무의식중에 갖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원형에 대한 강한 생각은 기원전 3세기 중국의 진시황제가 화폐의 디자인을 겉은 둥글고 구멍은 네모난 원형방공(圓形方孔)으로 통일하였다는 기록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으나 그 이유에 대해 는 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최초의 동전(銅錢)이라 할 수 있는 고려 해동통보(건원중보가 앞서 나왔으나 이는 鐵錢임)에서 그 고유한 철학적 배경을 엿볼 수 있다. 고려 숙종때(1097년) 의천(義天)은 왕에게 동전을 만들어 사용할 것을 건의하면서 그 동 의 양이 밖은 둥글고 안은 모난 것을 지칭하여 둥근 것은 하늘이고 모난 것은 땅이니 하늘이 만물을 덮고 땅이 그 만물을 지탱하여 없어지지 않게 함이라고 전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 4각형인 영국령 저지(Jersey, 영국해협에 위치) 섬의 1파드, 7각형인 영국의 20펜스, 11각형인 캐나다의 1달러, 12각형인 이스라엘의 5쉐캐림(Sheqalim) 주화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다각형의 모양을 하는 경우도 드물지는 않지만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주화가 만들어지더라도 그 모양을 원형에서 벗어나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원형의 형태에 우리의 철학적 사고가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이미 원형의 주화를 사용하도록 제작된 많은 자동판매기 등의 교체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기존관념이 바뀌고 있는 지폐

오늘날 우리는 주화에 대칭되는 개념으로 지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 지폐는 대부분 법적으로 중앙은행에서 발행되므로 은행권(銀行券)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가 지폐라 일컫는 은행권은 일반 종이와는 전혀 다른 소재로 만들어진다. 즉 일반 종이는 천연 펄프로 만들어지나 대체로 은행권 용지는 면이 주재료로 사용되어 왔다. 그 이유는 면 소재가 촉감이 부드러우면서도 질기고 강할 뿐만 아니라 때가 잘 타지 않아 쉽게 더러워지지 않으며 잉크가 잘 스며들어 인쇄상태가 우수하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물론 많은 나라에서 순면(면 100%)의 용지로 은행권을 만들고 있으며 미국, 영국 등의 국가에서는 면에다 아마(Linen)를 혼합하기도 하고 일본의 경우는 면에 삼펄프 등을 혼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은행권의 소재도 이제는 변화하고 있다. 즉 전통적인 면 소재 이외에 플라스틱 재질의 폴리머(polymer)가 등장하고 있다. 폴리머 은행권(polymer note라고도 함)은 1988년 호주에서 처음 개발·도입되었는데 플라스틱 재질의 특성으로 내구성이 강한 데다 투명창 등의 다양한 위조방지요소를 적용할 수 있어 오늘날 호주를 비롯하여 17개 국가에서 도입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 도입국가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가 1996년과 2000년에 각각 전 권종의 은행권을 폴리머 노트로 바꾸었으며 태국·인도네시아 등 6개국은 기념은행권과 현용 은행권의 일부 권종을, 중국·브라질 등 9개국은 기념은행권을 폴리머 노트로 만드는 등 최근 그 도입추세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지폐는 식물성 섬유인 종이로 만들어진다는 기존 관념에 획기적 변화가 예고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하지만 기존의 면 소재 은행권도 독특한 촉감 자체가 위조방지요소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면 소재에 적용할 수 있는 첨단 위조방지요소가 계속 개발되고 있어 세계의 화폐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아직 두 소재중 어느 쪽이 우수하다는 단정적 결론은 쉽게 도출되지 않고 있다

출생번호가 있는 은행권

우리나라 사람은 누구나 출생연월일을 기준으로 주민등록번호라는 고유번호를 가지고 있어 이것으로 동일인임을 증명한다. 돈(은행권)에도 낱장의 돈마다 출생 순번을 기준으로 하는 고유번호가 있다. 은행권에 붙이는 고유번호를 기번호(記番號)라고 하는데, 기번호는 기호와 번호로 구성된다. 여기에 만원짜리 한장이 있다. 앞면의 왼쪽위와 오른쪽 아래에 "1022335 차라나"라 쓰여 있는데 이것이 기번호이다. 여기서 문자인 "차라나"와 맨앞의 숫자"1"을 합하여 기호라고 하고, 숫자인 "022335"를 번호라고 한다. 기번호를 넣는 이유는 제조수량을 관리하는 데 편리한 점이 있고, 위변조를 방지하는 데도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기번호는 어떻게 붙이는가? 만원 은행권의 예를 들어보자. 기호는 문자 석 자(가나다... 중)와 숫자 한 자로 하고, 번호는 여섯 자리 숫자로 표시한다. 제일 먼저 만들어지는 돈에는 "가가가"로 하여 1번을 붙인다("0000001 가가가"). 이 번호가 백만번까지 가면 ("1000000 가가가")기번호가 바뀐다. 즉 "가가가"가 끝나면 "가가나"가 되어 다시 1번부터 시작하여 백만 번까지 가는 것이다. 그런데 맨앞의 숫자는 기호를 나타낸다고 했는데 "1"은 낱장 10억 장을 뜻한다. 이런 식으로 따져들어가 보면, 기번호 "차라나"는 9억 3200만 번째에 해당되는 것이고, 거기에서 다시 2만2천3백35번째로 찍어낸 것이라는 의미이니 결국 이돈은 19억3202만 2335번째로 만들어진 돈이라는 것이다.

"땡전 한 푼"의 유래를 찾아서

돈과 언어는 공통점이 있다. 언어가 있기에 이를 매개로 상호간 의사전달을 하면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어 쉽게 협조적 관계를 이끌어 내듯 상호간에 안심하고 주고받을 수 있는 돈이 있기에 거래가 단순화되어 누구든지 교환의 편익을 쉽게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돈은 모든 경제적 거래의 언어라 할 것이다. 그런데 "돈"은 변했어도 우리가 즐겨 쓰는 돈에 관한 "언어적 표현"은 쉽게 바뀌지 않아 언어를 통해 "돈"의 옛 자취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실마리를 얻게 된다. 예를 들면 가진 돈이 전혀 없음을 강조할 때 흔히 "땡전 한 푼" 없다고 말한다든지 저축을 홍보할 때 "푼돈 모아 목돈 마련" 등이라는 표어를 아주 자연스럽게 쓰고 있는 것이 그 실마리이다. 그러면 "땡전"은 무엇이고 "푼"은 무엇일까?

먼저 "푼"은 우리나라에 근대화폐 즉 신식화폐가 등장하기 이전에 사용되었던 조선통보·상평통보 등을 일컫는 엽전 한 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10푼(엽전 1장의 무게가 중량단위인 1문(文, 약 1돈)에 달해 "푼"과 "문"이 혼용됨에 따라 10푼을 10문으로도 표기)은 1전(錢)이며 10전(錢)은 1량이 되니 1량이면 100푼이었다. 또한 "땡전"은 고종 3년(1866년)에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에 그 막대한 경비조달 등을 위해 당백전(當百錢)을 제조·통용 킨 데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즉 당시 당백전은 실질가치(소재가치)가 상평통보의 5∼6배에 불과한 반면 그 명목가치는 실질가치의 약 20배에 달하여 발행초기에 쌀값을 6배로 폭등케 하는 등 국민들의 생활을 극도로 피폐하게 하였다. 이로 인해 당시 사람들이 "당백전"에서 "당전"을 거세게 발음하여 "땅전"으로 다시 "땅전"을 "땡전"으로 보다 격하게 발음하게 되어 그 "땡전"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여진다. 이는 실로 국민의 생활편의를 도외시하고 제조·유통된 화폐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경고가 쉽게 바꿀 수 없는 "언어" 속에 오래도록 간직되어 왔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세계 최고의 가치를 지닌 화폐

각 나라의 화폐는 그 경제의 실상을 대변해 주고 있다. 즉, 물가가 급등하는 등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나라의 경우 고액권이 유통되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액면이 낮은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인 요인과는 별도로 발권당국의 정책적인 판단에 따라 의도적으로 고액권을 발행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현재 사용되고 있는 화폐 중 최고 액면의 화폐는 어떤 화폐일까 ? 그 답은 2001년 11월에 새로 발행된 터키의 2천만리라이다. 그러나 이 돈의 가치는 우리나라 돈으로 약 17,000원 정도에 불과하며 터키에서 이렇게 초고액권을 발행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연 50%를 상회하는 초인플레이션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터키에서는 지난 1997년에 5백만리라가 발행된 이후 1999년에 1천만리라, 2001년에 다시 2천만리라가 새로 발행되는 등 불과 2년만에 최고액면 화폐 기록을 갱신하였다.

한편, 현재 공식적으로 발행 유통되고 있는 외국화폐 중 최고가치를 지닌 화폐는 어느 화폐일까 ? 그 답은 1973년부터 싱가포르에서 발행되고 있는 10,000달러와 1989년부터 브루나이에서 발행되고 있는 10,000링깃으로 생각되는데 그 가치는 자그마치 우리나라 돈으로 700만원을 상회하고 있다.

다만, 이 두 화폐는 두나라 발권당국이 정책적으로 발행하고 있어 일반거래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그대로 인정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이런 점에서 실제 많은 양이 유통되고 있는 화폐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이 경우에는 스위스의 1,000프랑(약 771,000원), 네덜란드의 1,000굴덴(약 718,000원), 독일의 1,000마르크(약 573,000원)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2002년 1월 1일 유로화가 출범함에 따라 네덜란드의 1,000굴덴과 독일의 1,000마르크는 그 생명을 다하게 되고 500유로(약 60만원)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2008-03-24 12:08 | 출처 : 본인작성 , [카페] 시와 음악이 있는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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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장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화폐는 위와 같은 10000원권 지폐일 것 입니다. 보통 지폐라고 말하면 세종대왕님을 부르고, 푸른빛을 떠올리죠. 그런데, 생각보다도 훨씬 많은 화폐들이 존재하고 잇다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ㅋ 저희집에는 어머님께서 화폐를 수집까지는 아니시지만 종류마다 한장씩은 버리지 않고 모아두셔서, 가끔 보는데, 우리나라 것 같지 않고, 꽤 생소하더라고요. 최근에 10만원권 발행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었죠. 오늘 아이허브로.. 2008-11-24 15:09 이 답변 자세히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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