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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 1학기 사회에서 삼국시대의 우리의 복장

함동균 | 2008-05-09 16:25 | 조회 0 | 답변 1

삼국시대의 우리의 복장은 어떠했나요??

 

고구려, 백제, 신라의 복장에 차이는 있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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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시대]

 

우리나라는 평양을 중심으로 한 고조선과 그 북족에 부여, 동북쪽에 예맥, 남쪽에 진이들 부족국가는 한사군이 설치되자 북쪽에 옥저 동예등이 나타났으며 남쪽에는 삼한이 이루어졌다. 고조선은 단군광검에 의하여 기원전 2333년 에 세워졌다 단군 조선때의 복식에 관해서는 <증보문헌비고>에 머리에 개수아는 법을 가르쳤다 라고 기록된것으로 보아 우리 고유의 복식이 이미 이때부터 형성된것으로 보인다. 또한 위만 조선이 조선에 입국할때 추결만이복 하였다고 기록한것으로 미루어 우리나라의 복식은 한족과는 달리 북방호족 계통임을 알려 준다.

 

부여 해모수가 기원전 59년에 세웠는데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보면 흰옷을 좋아하여 흰천으로 지은 대메포와 바지를 입고 갖신을 신었다고 한다. 옥저와 동예는 후에 고구려에 복속하게 되었는데 의복제도는 곡령을 입었으며 남자는 은화장식을 하고 여자는 바지를 입지 않고 준의를 입었다. 삼한중 마한 사람들은 무명을 짜고 전잠을 하였으며 상투틀고 목걸이와 귀걸이를 하였다고 한다. 또한 변한진한 사람들은 잘발에다가 흰옷을 즐겨 입었으며 고깔을 좋아하고 넓은 폭의 곱고 자는 삼베를 잘 짰다고 한다.

 

 

[삼국시대]

 

우리나라 상고 복식의 원형은 저고리 바지 치마로 갈라져 있는 북방 호복계통의 옷이다. 삼국시대에 복식은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서 볼수있는 데 머리에는 관모를 썼으며 저고리가 엉덩이까지 내려오고 직선으로 교차시켜 여미는 깃형태의 직령교임식으로 외쪽여밈이다. 또 깃 부리 도련에는 다른 천으로 선을 두르고 바지는 가랑이가 좁은 홀태바지 형이다 그리고 양복바지와 같은 궁고 가랑이가 넓은 광고 잠방이와 같은 바지도 있었다. 치마는 길이가 길고 거단까지 잔주름이 잡혀 있다 두루마기는 무릎을 내려갈 정도로 길고 저고리와 같이 선도 보인다. 신은 주로 화를 신고 이도 병용하여 신었다. 이와 같이 실용적이고 활동적이며, 북방 한대성 기후에 알맞은 옷이다.

 

- 관모

            <책>                    <절풍>                   <걱권>                   <금제내관>

* 책 : (안악 3호분 주인도) 주로 고구려인의 대가주부가 씀

* 절풍 : (쌍영총 기마상) 변상의 관모 고구려에서 신라까지 이용 깃털꽂은건 귀인용이고 자주색 비단으로 만든 소골이라는 관은 일반 남자들이 썼다.무풍적인 기상과 높은지위의 표상을위해 변형두 함

* 갓 : 7세시경부터 , 폐양립은  원성대양조의 소립 이란 말이 최초의 기록이며 이소립은 순수한 죽제의 갓

* 건권 : 하나의 수건과 같은 것으로 남녀가 같이 이용 머리가 흘러 내리는 것을 올리기위해 주로 부인의 관모로 착용

* 금관 : 경주 교동출토의 금관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됨 우리나라 고유의 관모

 

- 저고리

               <짧은 저고리>                                     <바지>                                 <색동치마>

* 저고리 : 유,다의라구 하였고 신라에서는 위해라구 일컬음 구성상으로 유나 삼으로 표기 , 유는 겹저고리, 삼은 홑저고리를 말한다. 저고리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거의 같고 형태도 남녀가 비슷 색갈문양이 다양하고 왼쪽여민에 통소매 노동착의로 짧은 저고리를 입었다. 소매길이, 선도 문양과 색깔이 다른것을 보면 귀족과 평민의 계급적표시

* 바지 : 고,경의라구 함 신라에서는 가배.가반, 여자의 바지는 고쟁이로 불리게 됨 .  상고시대부터 남녀가 모두 입음 부인들도 기마를 했으므로 편한바지를 입었을 것

* 치마 : 상 또는 군으로 표현 , 고구려벽화에는 치맛단에 잔주름이 있고 장식선이 붙어 있음

 

- 두루마기

* 두루마기 : 솜을 둔 긴옷, 바지저고리 치마저고리위에 입음 방한을 위한 목적으로 모두 입음

 

 

[신라시대]

 

신라의 복식은 관모에는 복두 상의로는 표의 , 반비, 단의 ,내의 배당이 잇었다. 띠에는 보통의 띠와 용대가 있었고 하의로는 고와 상, 발에는 버선,이 화대가 달린 화를 신었으며 표라는 목수건이 있었다. 통일신라는 문화의 전성기로 복식도 발달. 흥덕왕9년에는 계급적 복식질서를 쥬지하기 위해 복식금제명령이 내려짐.우리고유의 관모인 소골,절풍 대신 진골에서 평민에 이르기 까지 일률적으로 복주를 썼는데 이것은 당나라의 절상건에서 나온것으로 여겨지며 단석산 공양인물도에서 복두의 모습을 볼 수 있다.표의,바지,저고리 :웃옷으로 표의라는 두루마기가 잇는데 남자의 겨우는 포란이라 하였다. 이포란의 형태는 문관은 옆이 막혀있고 무관은 아래가 한자 정도 틔어 잇어 직책에 잘 어울렸다. 표의는 상하구별없이 통요되었으며 평인은 마포나 갈포를 사용하고 4두품이상은 면주로 하였다.저고리는 흥덕왕 복식 금제에 단의라 기록하고 있는데 그뜻은 요즘의 저고리 처럼 길이가 짧아서 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또 내의 는 포를 입엇을때 저고리`를 말하는것과 같다.치마, 반비 배당 : 신라에서 당나라의 복식을 모방하여 상을 입었으나 여자의 치마인 군과는 다른 형태이며 의례용이었던것같다 복식 금제에서는 내상과 표상의 구별이 보이는데 내상은 속치마로 추측된다.반비는 남녀공용으로 소매가 짧으며 전복이나 답호와 같다. <지봉유설>에 보면 배자와 같다고 한다. 배당에도 배자와 같으며 소매가 없다 복식금제에서 보면 6두품에서 4두품까지 여자에게 허용하였던 옷이다.

 

- 관모

* 관모 : 남자의 두발을 보면 소년은 매는 형이고 성인은 상투를 틀었으며 머리에 스는 대표적인 것으로 복두가 있음

2008-05-09 16:39 | 출처 : 본인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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