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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총 수렵도 지식머니 100

BIGBANGgirl | 2008-10-06 16:04 | 조회 0 | 답변 3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에 대한 궁금 한 것 좀 물어볼께요

최대한 빠른 시간안에 글좀 올려주세요

(이상한 글 말구요)

1.수렵도는 왜 사냥하는 모습인가?

2.수렵도는 왜 만들어 졌나?

3.수렵도는 누가 만들었나?

이거 3개요 최대한 빠른시간안에 부탁들려요

ㅜ.ㅜ

제발요..(이상한 글 말구요)

지식 머니 100걸께요!!!!

오늘 저녘까지여

이 질문에 답변하시면 지식머니 5, 채택시엔 130 을 더 드립니다.
네티즌 채택

nix161 | 답변 1129 | 채택률 85.3%

활동분야 : 역사 | 사회
본인소개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1수렵도는왜 사냥하는모습인가

 

무용총 수렵도의 화살촉은 둥그렇다? 그렇습니다. 무용총 수렵도를 보면 분명히 그 화살촉이 둥그렇습니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들은 이에 대해서 의문을 던집니다. 왜 둥그런 모습의 화살촉을 썼을까? 그러한 화살촉을 쓰면 동물들이 맞아도 아무런 이상이 없지 않을까? 그런데 왜 굳이 둥그런 화살촉을 쓰는 걸까?라고 말이지요.

 

이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무용총 수렵도에서 나오는 그 장면은 당시의 사냥 장면과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즉 당시 사냥에서는 말을 타고 멋지게 달려가는수렵도를 만든이유 : 활달하고 힘찬 고구려인의 기상을 보여주기 위해서 입니다 사냥꾼(?)이 둥그런 화살촉이 있는 화살을 쏘았다는 것이지요.

역사적 가치:고려 공민왕의 작품 14세기

보존상태:비교적 양호함

가치와 의의:그림 자체로도 훌륭한  송원체풍이며, 제왕이 남긴

무용총 수렵도

 


 

현실 서쪽 벽면에 있는 것으로,
평양 약수리 고분의 수렵도와 함께 고구려인의 활달한 기상을 전하는 대표적 그림 중 하나다.

 
수렵도의 아래 부분에는 호랑이를 쫓는 무사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쏜살같이 달리는 말 위에서 이를 포획하려는 무사의 기백과 긴장된 움직임이 화면에 가득하다.

 
오른쪽 부분에는 소가 끄는 수레가 있다.
소가 끄는 수레에는 보통 여자가 탔고
말이 끄는 수레에는 남자가 탔다는 설이 있다.
마부는 채찍을 들고 있다.  

유일한 그림
집안의 무용총 벽화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장면이 수렵도다. 수렵자와 짐승들 사이에 형성되는 수렵터 특유의 쫓고 쫓기는 급박한 흐름이 힘있고 간결한 필치로 잘 표현된 널방 오른벽의 수렵도는 고구려 고분벽화를 대표하는 것 중 하나다.


놀라 달아나는 호랑이와 사슴, 말을 질주시키며 정면을 향해, 혹은 몸을 돌려 활시위를 당기려는 기마인물의 자세는 굵기에 변화를 준 물결무늬 띠를 겹쳐 표현한 산줄기에 의해 한층 더 속도감과 긴장감을 부여받는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불끈거리는 말 다리의 근육, 네 다리를 한껏 앞뒤로 뻗으며 내달리는 짐승들. 강약이 조절된 필치와 짜임새 있는 구성 속에서 짐승과 사람, 산야의 어울림이 크고 생생한 울림이 돼 바깥으로 터져 나오는 듯한 분위기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현대인의 눈에 익숙한 단일 시점 중심의 원근법, 사물의 크기에 맞춘 비례표현 등이 무시됐다고 지적될 수 있으나, 중요시되는 것을 우선적으로 크게 그리던 당시 회화의 일반적 표현기법에 충실했던 결과일 따름이다. 화공의 사물묘사 능력이나 기법의 한계로 말미암은 것은 아니다. 화면 상단에 배치됐으면서도 한쌍의 자색 사슴이 호랑이보다 크게 그려지고, 두 마리의 사슴이 달아나는 방향과 엇갈리는 방향으로 말을 달리면서 몸을 돌려 활을 겨누는 인물이 다른 수렵자들과 별 차이없는 크기로 묘사된 것도 화면 안에서 이들이 지니는 의미가 유별난 까닭이다. 두 마리 사슴은 뒤이을 제의의 희생제물로 바쳐질 것이라는 점에서 이 수렵에서 얻어질 어떤 노획물보다도 귀중하며, 이들 짐승을 직접 사냥하는 인물은 머리에 쓴 절풍 위의 많은 깃털 장식에서도 드러나듯이 수렵터에서도 가장 고귀한 존재일 뿐 아니라 제의의 주관자로 예정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활시위를 당기거나 수렵자의 활을 피해 달아나는 짐승들의 자세와 표정이 사실적이고 정확하다 못해 생생한 데에서 고구려 화공의 빼어난 묘사력을 읽어낼 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수렵도 가운데 무용총 벽화의 수렵도에 특별히 세인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수렵도는 무용총 외에도 안악1호분을 비롯해 덕흥리벽화분, 약수리벽화분, 감신총, 용강대묘, 동암리벽화분, 대안리1호분, 수렵총, 장천1호분, 삼실총, 마선구1호분, 통구12호분 등 다수의 생활풍속계 고분벽화에서 발견된다. 수렵장면이 고분벽화의 제재로 선호됐음을 알 수 있다. 고분벽화 속 수렵도는 구성과 기법이 매우 다채로워 고구려에서 행해지던 수렵의 종류와 방법, 수렵 대상 등을 파악하게 할 뿐 아니라, 시기별, 지역별 회화적 동향을 짚어내는 데도 큰 도움을 준다. 장천1호분 수렵도 속의 매수렵 부분은 안악1호분 및 집안 삼실총 매수렵 장면과 함께 현재까지 전하는 매수렵의 가장 오랜 표현사례에 속한다.


덕흥리 벽화고분에서 수렵도는 다양한 별자리 및 하늘세계의 존재들과 한 공간에 표현돼 고구려에서 수렵이 지니고 있던 종교, 신앙적 측면을 잘 드러낸다. 약수리벽화분의 수렵도는 산봉우리 사이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짐승들을 넓은 들판으로 몰아내는 데에 열중하는 몰이꾼들을 묘사해 고구려에서 행해지던 몰이수렵의 실체를 잘 보여준다.


무용총 수렵도가 이뤄낸 독특한 미적 세계는 유사한 구성·내용을 보이는 덕흥리 벽화고분의 수렵도와 대비할 때 더 잘 드러난다. 무용총 수렵도가 벽면의 대부분을 화면으로 삼으면서 표현대상을 제한해 화면에서 일정한 역할과 효과를 자아내도록 배치함으로써 전체 구도를 간결하면서 짜임새 있게 한 것과 달리 덕흥리 벽화고분에선 천장고임 하단부의 좁고 긴 면을 화면으로 삼아 표현대상들이 천상의 존재들과 별다른 경계를 이루지 않은 상태로 등장하게 함으로써 수렵도가 천상세계 표현의 일부처럼 여겨지게 했다. 수렵터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낼 여지를 극히 좁혀버린 것이다(위 그림 ).


덕흥리 벽화고분 수렵도에 묘사된 판지를 오려붙인 듯한 산줄기, 고사리순처럼 표현된 산봉우리의 나무는 산줄기 사이를 내달리는 기마수렵꾼들의 공간적 배경으로서의 의미를 충분히 살려내지 못한다. 이에 비해 보는 사람에게서 멀어짐에 따라 白-赤-黃의 차례로 채색하는 고대 設彩法의 원리를 바탕으로 가장 가까운 산은 흰색, 그 뒤의 산들은 붉은색, 먼 산은 노란색을 바탕색으로 한 데에 더해 물결무늬 띠 겹침으로 내부를 묘사한 무용총 수렵도의 산줄기는 수렵 배경으로서의 공간감에 속도감을 더하는 효과를 자아낸다. 활시위를 당기는 덕흥리의 수렵꾼의 자세는 수렵터에서의 정확한 관찰을 바탕으로 묘사됐지만 가늘고 부드러운 선 흐름은 수렵터의 긴박감을 드러내기에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 무용총 수렵도 수렵꾼과 말의 표현에 적용된 굵고 강한 필선이 수렵터 특유의 긴장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점과 비교된다. 수렵터의 말들도 덕흥리에서는 몸을 뒤로 틀면서 활시위를 당기는 수렵꾼의 자세를 본받아 앞으로 내달리면서 머리를 틀어 뒤를 돌아보도록 묘사됨으로써 수렵터의 실제 상황과 차이를 드러낸다. 튼튼한 다리와 발달된 근육을 지닌 것으로 그려진 무용총 벽화의 말들과 상체가 비대하고 다리가 가는 덕흥리 벽화고분 수렵도의 말들도 서로 대비가 된다.


5세기 전반으로 편년되는 무용총의 수렵도는 5세기 전반까지도 고구려에서는 새로운 예술장르로 여겨지던 고분벽화에 모습을 드러낸 고구려식 회화의 걸작 가운데 하나다. 내용과 구도, 기법상 408년경 제작된 덕흥리벽화분 수렵도에 고구려식 이해와 문화전통, 종교관념을 더해 만들어낸 고구려표 수렵도라고 할 수 있다. 무용총 벽화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얼굴선이 깔끔하고 이목구비가 또렷한 고구려인 특유의 얼굴을 지녔으며, 왼쪽 여밈과 가장자리 을 특징으로 하는 고구려인 고유의 옷차림을 했다. 자연스러우면서도 강하게 뻗어나가는 필선, 제한된 표현대상 중심으로 화면을 짜임새 있게 구성하는 방식은 중국회화의 영향을 느끼게 하는 평양, 남포, 안악지역 고분벽화 수렵도에서는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5세기 내내 고구려의 집안과 평양지역 고분벽화에 여러 차례 모습을 드러내는 수렵도에서 무용총 벽화에서와 같은 짜임새와 기법, 분위기는 다시 발견하기 어렵다는 사실에서 무용총 수렵도가 지니는 미술사적 위치를 재확인 할 수 있다.

2008-10-06 16:15 | 출처 : 본인작성

사이언스유민 | 답변 0 | 채택률 0%

활동분야 : 해당 분야가 없습니다.
본인소개 : 안녕하세요. 제이름은 박유민이라고 해요 저는 지금 초등학생이구요,...

1.신나게 움직이는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

2.그림이여서

3.사람

2008-10-09 19:30 | 출처 : 본인작성

dfasdfas1234 | 답변 0 | 채택률 0%

활동분야 : 해당 분야가 없습니다.
본인소개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사냥장면은 스키타이와 이란의 동물미술에 기원을 두고 발달한 것으로 중국에서는 이미 한나라의 화상석(畵像石)이나 고분벽화에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송나라 때 편찬된 〈선화화보 宣和畵譜〉에는 번족(番族)이라는 화문(畵門)을 따로 두어 서역인의 활달하고 힘찬 기질과 사냥을 주로 표현한 그림들을 따로 구분했다. 그림의 제목으로 미루어 말 타고 활 쏘거나 사냥하는 장면이 대부분이다. 한국에서는 청동기시대의 동물문견갑이나 울주군 반구대의 암각화에도 사냥과 관계되는 단편적인 표현은 있으나 진정한 의미의 수렵도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시작된다. 덕흥리(德興里)·약수리(樂水里)·감신총(龕神塚)·장천1호분(長天一號墳) 외에 대표적인 것은 뛰어난 필치와 생생한 묘사력으로 북방기마민족의 기상을 잘 표현한 무용총(舞踊塚)의 수렵도이다. 사실적인 기마인물과 달리는 동물 사이사이에 배치된 도안화된 산악과 수목표현은 한국 고대산수화의 발생과 수준을 시사해준다. 이밖에 고려 공민왕의 〈천산대렵도 天山大獵圖〉 잔폭과 이제현의 〈기마도강도 騎馬渡江圖〉가 있으며, 조선 후기에는 호렵도(胡獵圖)가 민화로 많이 제작되었다.

2009-07-12 21:43 | 출처 : Daum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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