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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피림

해와 달처럼 | 2010-05-25 20:17 | 조회 0 | 답변 5

Daum 카페 진짜바로알자 신천지 (http://cafe.daum.net/scjschool)에서 등록된 질문입니다. 원문보기

네피림은 어떤 존재이며 무엇을 말하는가.

이 질문에 답변하시면 지식머니 5, 채택시엔 30 을 더 드립니다.

천국소망7 | 답변 402 | 채택률 26.9%

활동분야 : 개신교
본인소개 : 성경말씀을 아는사람이 아니라 행하는 자가 되기를.....기도합니다

 창세기 6장부터는 노아의 홍수와 관련된 내용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물로 이 땅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으셨던 당시의 상황들이 설명되고 있으며 또한 의인이요 당세의 완전한 자로서 하나님과 동행하였던 노아에 대해서도 나오게 되지요.


   그런데 앞으로 설명될 노아의 홍수 사건은 마지막 때를 살고 있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4:36-39에 보면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말씀하고 있지요.

 

홍수의 심판이 있었던 노아 당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역시 죄악으로 관영하여 더 이상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기 힘든 상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4에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말씀하셨습니다.
  
   
   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창 6:1에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가인의 후손인 라멕의 대에 이르러 비로소 사람들의 삶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고 문명이라 말할 수 있는 것도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인구가 많아진 것이 가장 큰 요인이었지요. 인구가 적을 때에는 스스로 자급자족하며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에 급급했으나 점차 사람의 수가 많아지면서 서로 협력하는 가운데 삶이 안정되고 문명을 싹틔워 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이 땅에 사람들이 번성하면서 삶이 안정되고 문명이 발달해 갈수록 하나님과의 관계는 오히려 점점 더 멀어져갔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에서 인간 중심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삶으로 바뀌어갔던 것이지요.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인 것을 보게 됩니다. 오히려 경제적으로 잘 살고 발달한 나라일수록 점점 더 자기중심적이 되어가고 있으며 기독교 역시 쇠퇴해 가는 것을 볼 수가 있지요. 문명이 발달하고 과학과 기술이 발달하며 더 안정되고 부유한 삶을 살수록 사람들은 하나님을 멀리하며 더욱 죄악으로 물들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로는 말 그대로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번성하며 퍼져나가기 시작했음을 의미하고 둘째로는 그 결과 사람들이 점점 하나님과 멀어져가게 되었음을 의미하게 되지요.

 

겉으로 보면 번영되고 안정된 삶을 누리게 된 것 같지만 그와 동시에 사람들은 급속히 죄악으로 물들어가면서 점차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아갔던 것이지요.
  

 '땅'이라는 말에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이 땅을 가리키는 의미만이 아니라 생령이었던 아담이 살던 영의 세계인 에덴과 대비되는 육의 세상을 나타내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한다는 것은 영적으로는 사람이 점차 육의 세상에 물들어감에 따라 육의 사람이 되어간다는 의미이지요.

 

이처럼 창6:1절의 말씀은 당시의 상황이 신앙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모든 면에 있어서 이미 깊이 악으로 물들어 있었음을 나타내 줍니다. 하나님께서 왜 홍수로 이 땅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으셨는지 그 이유를 짐작케 해 주는 말씀이지요.


   이어지는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라는 말씀은 단순히 그 전까지는 사람들이 아들만 낳다가 딸들을 낳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전에도 당연히 딸들을 낳았는데 왜 굳이 이렇게 표현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이어지는 2절에서 일어나게 될 사건들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그전에도 물론 딸들이 있었지만 '사람이 이 땅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즉 육으로 깊이 물들어가면서 낳게 되는 딸들이 2절의 사건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2절에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은 누구이고 사람의 딸들은 누구일까요?
   

오늘날 믿는 사람들 중에는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를 나타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5 말씀을 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가 있지요.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22:30에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말씀하셨는데 이는 천사들이 사람들처럼 장가를 가거나 시집을 가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를 가리키며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삼았다는 주장은 성립될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아담의 후손들 중에서 정통 계보를 이어 나온 셋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가인의 후예와는 구별하여 셋의 후예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표현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설득력이 없는 것은 성경 어느 곳에도 셋의 후예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표현했다고 할 만한 근거가 없으며 가인의 후예를 사람의 아들이라 표현한 것도 없습니다.

 

 다만 구약 욥기에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표현이 몇 군데 나오는데 이것이 누구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창세기 강해를 통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이란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둘째 하늘의 에덴동산에 살고 있는 아담의 후손들을 의미합니다.

 

그 중에서도 아들이라 했으니 남자를 의미하지요. 아담이 에덴동산으로부터 쫓겨난 후에도 에덴 동산에서 낳은 그의 후손들은 여전히 그 곳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덴동산과 이 땅을 오고 갈 수가 있는데 누구나 아무 때나 내려올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 살면서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을 다스리는 권세가 있을 때는 에덴동산과 이 땅을 오고 가는 것이 비교적 자유로웠지요. 아담 자신이 자유롭게 오고 갔을 뿐만 아니라 아담의 후손들 중에도 아담과 함께 이 땅에 내려왔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범죄하여 이 땅으로 쫓겨오면서 그 동안 에덴동산과 이 땅을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었던 문이 닫히게 되지요.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닫힌 것이 아니라 오고 가는데 많은 제약이 따르게 된 것입니다. 영계의 문을 관장하는 그룹의 허락을 받아야만이 이 땅에 내려올 수 있게 되었지요. 그러니 이 땅에 내려올 수 있는 사람이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한 것도 바로 이러한 제약 조건이 있었음을 나타내지요. 여자라 해서 이 땅에 결코 내려올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로 남자에게 내려오는 것이 허락되었으며 결국 이 남자들로 인해 영계의 질서가 깨어지는 커다란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시에 에덴동산에 살던 사람들은 왜 이 땅에 내려오고자 했던 것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땅에 사는 사람들과 그들의 삶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고 또한 자신들의 조상인 아담을 직접 보며 위로하고자 하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더욱이 아담이 직접 낳은 아들과 딸들은 부모인 아담과 하와가 당연히 보고 싶지요.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아담이 에덴동산으로부터 쫓겨난 후에 곧바로 영계의 문을 닫아 에덴동산과 이 땅 사이의 왕래를 금하신 것이 아니라 제한적으로 허락해 주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에덴동산에 사는 사람들이 이 땅에 내려오는 것이 계속되면서 그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에덴동산의 사람들에게도 이 세상에 있는 육이 틈타기 시작한 것이지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번성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급속히 악으로 치달아 가게 되는데 에덴동산의 사람들도 이 땅에 내려오면서 이러한 악의 모습들을 자연히 접하게 되고 점차 육에 물들어 가게 되었습니다.
   

본문에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았다'는 것이 바로 에덴동산의 사람들에게도 안목의 정욕이 들어가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어떻게 그들이 세상에 물들 수 있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에덴동산의 사람들에게도 첫 사람 아담과 마찬가지로 자유의지가 있으니 그들도 육을 취하게 되면 얼마든지 육에 물들 수가 있습니다.

 

그들이 에덴동산에 사는 동안에는 항상 빛 안에서 지킴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자유의지가 비진리 쪽으로 발동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 내려와 육의 것들을 보아가면서 자유의지 가운데 점차 안목의 정욕을 취하게 되자 마침내는 육신의 정욕으로 발전하게 되지요. 그 결과 이 땅에 사는 여자들을 아내로 취하게 되는 일까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에덴동산에 있는 여자들이 이 땅의 여자들보다 훨씬 아름다운데, 피부색도 곱고 아름다운데 왜 그들이 굳이 이 땅의 여자들을 아내로 취하였을까' 생각할 분도 있을 텐데, 사람이 육에 물들어 가면 아름다움의 기준도 달라질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이 보면 너무나 정욕적이고 세상적인 모습인데도 세상의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얼굴에 화장하는 것을 보아도 현란하고 음산한 색깔로 화장하면서도 예쁘다 말하지요. 당시의 상황도 이와 마찬가지였습니다.
   

에덴동산의 여자들은 하나님께서 처음 지어 주신 그대로의 미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반면 이 땅의 여인들은 세상적이고 정욕적인 모습으로 자신들을 치장하고 있었지요.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이 땅의 여인들이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지만 육에 물들어 가게 되니 오히려 에덴동산의 여자들보다 이 땅의 세상적인 여자들이 더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딸들을 취하게 된 것이고 그것도 자기들의 보기에 좋을 대로 다 취하였지요.
   

그러니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영계의 질서를 어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당장 벌을 내리시고 영계의 문을 닫아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아예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처음부터 막으면 되지 않으셨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강제로 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자유의지 가운데 모든 것을 맡겨 두셨지요.

 

스스로가 돌이킬 기회를 주셨던 것이며 공의의 한계에 이르기까지는 참고 또 참으셨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악은 오히려 더해져만 갔고 정욕적인 모습이 되어가고 말았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한계선을 넘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으셨지요. 이것이 결국 홍수 심판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3.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러면 당시의 상황을 좀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4절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지요.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말씀했으니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다는 사실과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그 당시 이 땅에 내려온 하나님의 아들들이 두 종류였음을 말해주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말일까요?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안목의 정욕에 이끌려 사람의 딸들을 취하기 전에 이미 이 땅에 네피림이라는 존재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네피림'이란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사이에서 낳은 후예 를 가리키지요. 그런데 네피림을 낳은 하나님의 아들들과 앞서 살펴본 대로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들을 아내로 취하여 후예를 낳은 하나님의 아들들과는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땅에 내려와 네피림을 낳은 하나님의 아들들은 안목의 정욕에 이끌려 사람의 딸들을 취하고 그들로부터 후예를 낳은 것이 아니지요.


   그러면 '네피림'이라는 존재가 태어나게 된 과정에 대해 살펴볼까요? 아담이 이 땅으로 쫓겨와 살게 된 이후 에덴동산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이 땅에 내려와 아담과 그의 후손들의 삶을 보면서 이 땅 사람들의 삶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은 비록 에덴동산에서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이 영원토록 살 수 있지만 이러한 자신들의 삶보다 오히려 이 땅에 살아가는 아담의 삶을 더 동경했던 것이지요.
   

오늘날 선진 문명과 문명의 이기를 뒤로 하고 전원생활이나 오지에서의 색다른 삶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당시 에덴동산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에덴동산에 살던 사람들 중에는 자신들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를 사랑하여 이 땅에 함께 살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었지요.

 

예를 들어 아담과 하와가 직접 낳은 자녀들 중에는 부모인 아담과 하와를 사랑하여 그들과 함께 이 땅에 머무는 것을 원할 수가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 중에 에덴동산의 삶을 포기하고 아예 이 땅에 내려와 정착한 사람들이 있었지요.
  

 물론 이러한 사람들의 수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결코 이 세상의 육에 물들거나 안목의 정욕에 이끌려서 이 땅에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자유의지 가운데 선택한 것이었지요. 또한 사람들의 딸들과 결혼함에 있어서도 에덴동산에서와 같이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질서를 좇았습니다.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낳은 후예가 네피림이지요. 혹시 여러분 중에는 '왜 에덴동산은 영원히 사는 삶이며 질병과 사망이 없는 곳인데 왜 사망이 있고 질병이 있는 이러한 땅에 와서 살려고 했을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 땅에 와서 살 때에는 죽는다고 하는 것을 알지 못했어요.

 

아담이 9백 몇 살 살다가 죽는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에덴동산처럼 영원히 사는 것으로 알았던 것이지 얼마 살다가 죽는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할 때의 일입니다. 아담이 930세를 향수하고 죽기 이전의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4.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그런데 이렇게 낳은 자손인 네피림과는 다른 과정을 통해 낳은 자손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이 땅의 삶을 동경하여 이 땅의 여인들과 결혼해서 자손을 낳고 정착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 땅의 여인들의 육적인 아름다움에 빠져서 정욕적으로 여인들을 취하여 자손을 낳고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을 오가는 사람들이 나온 것이지요.
  

 이러한 모습을 가리켜 바로 본문 2절에서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2절 말씀은 네피림을 낳은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지요.

 

네피림을 낳은 사람들은 어떤 악을 좇아서 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굳이 이들에게 벌을 내리시거나 죄 있다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경우와는 전혀 다르게 정욕적으로 이 땅의 여인을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았던 에덴동산의 사람들이 나오게 된 것이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된 것이었지요.
   

더욱이 에덴동산의 사람들 중에서 점차 정욕적으로 이 땅의 여인들을 취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이 땅의 질서는 물론이고 에덴동산의 질서 또한 위협을 받게 됩니다. 그들로 인해 영계의 질서가 혼란해졌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도 도덕적으로 문란한 모습들이 만연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시는데 그 내용이 바로 본문 3절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1.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후예
   
   창6: 4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바로 에덴 동산에서 내려온 남자들을 의미하며 '사람의 딸들'이란 이 땅의 여자들을 의미하지요. 하지만 이렇게 에덴 동산에 사는 사람들이 이 땅의 여인들을 아내로 취하게 된 데에도 그 동기에 따른 두 가지 부류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는 이 땅의 삶을 동경하여 아예 이 땅에 내려와 정착해서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취해 사는 사람들이 있었지요. 이러한 사람들은 어떤 악한 마음에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단지 이 땅 사람들의 삶을 동경하여 스스로가 이 땅의 삶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이 땅에 내려와 정착하여 살게 된 사람의 수는 극히 적었지요. 따라서 이들의 존재가 영계의 질서를 깨거나 이 땅의 질서를 깨뜨리고 문란하게 할 만큼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그들의 행동이 하나님 앞에 합한 것은 아니었으나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도 그들이 어떤 악을 행하거나 죄를 지으려는 마음에서 그런 것이 아니었기에 이들을 그냥 이 땅에 두셨지요. 바로 이러한 사람들의 후예들이  4절에 나오는 '네피림'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 이 땅에 내려와 정착했던 에덴 동산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이유에서 이 땅에 내려와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취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지요. 이 땅의 여인들의 육적인 아름다움에 이끌려 정욕 가운데 그들을 아내로 삼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한 명만 아내로 삼은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았지요. 이는 이미 그들의 마음에도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이 들어왔음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서도 이 땅의 후예가 태어나게 되지요.
    4절 말씀이 이러한 상황들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말씀한 대로 먼저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 또다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후예를 낳았던 것이지요. 에덴 동산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이유에서 결국 이 땅에 후예를 남기게 된 두 경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아들들 중에 극히 일부이기는 하기만 이미 이 땅에 내려와 정착해서 네피림이라는 후예를 낳고 살아갈 때에, 이번에는 하나님의 아들들 중에서 정욕에 이끌려 이 땅에 내려와서 여인들을 아내로 취하여 후손을 낳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말이지요. 이처럼 짧은 한 절의 말씀에도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전에 이 땅에서 있었던 엄청난 사건의 비밀이 담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2.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죄라는 것은 금방 주변으로 전염되고 또 더 깊이 빠지게 만드는 속성이 있지요. 그 당시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기 보기에 좋은 대로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삼는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모습이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이 땅의 사람들까지도 급속도로 도덕적인 문란함에 빠지게 하는 원인이 되었지요.
  

 이 땅에는 이미 성적 타락이 심해져 가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기 좋을 대로 모든 여자를 아내로 취하는 모습은 이 땅의 사람들의 성적인 타락을 부추기는 매우 안 좋은 영향을 주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죄에 빠진 하나님의 아들들은 이 땅에 내려와서 정착하여 산 것이 아니라 이 땅과 에덴 동산을 오고 가며 살았습니다. 그러니 자칫 이들로 인해 에덴 동산에까지 비진리가 급속하게 퍼질 수 있었지요.
   

결국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보고만 계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정하신 공의의 한계를 넘었기 때문에 공의의 심판이 내려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이 땅에 홍수의 심판을 불러오는 계기가 되고 맙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단번에 홍수의 심판을 결정하신 것은 아니지요. 단번에 다 멸해 버릴 수도 있으셨지만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시기 위해 먼저 1차적으로 경고성의 심판을 내리십니다.
   

 그 내용이 바로 창6: 3절에 나오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대상은 단지 당시에 이 땅에 내려와 육에 물들어 감으로 결국 육체가 되어 버린 에덴 동산의 사람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 이 땅에 살던 모든 사람들 가운데 육체가 되어 버린 사람들은 다 포함되지요.
  

 여기서 육체가 되어 버렸다는 것은 죄와 악과 불법, 불의 등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는 어둠 가운데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처럼 육체가 된 사람들을 향해 그들과는 영원히 함께하지 않으시겠다 선언하신 것이지요.

 

이는 다시 말해 육체의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원수 마귀 사단의 종이요 자녀로서 결국 사망지옥으로 갈것을 말씀하시는 입니다.

 

이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여 고린도후서 6:14 후반절에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말씀한 대로 빛이신 하나님께서는 어둠과 함께하실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중에 혹여 나는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것 같은데 나는 하나님을 잘 믿는 것 같은데 왜 하나님께서는 나와 함께해 주시지 않는가? 나는 왜 형통함을 받지 못하는가? 나는 왜 축복을 받지 못하는가?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다면 바로 이 말씀에서 해답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빛 가운데 거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과 함께하십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여전히 어두움 가운데 거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실 수가 없지요. 따라서 여러분에게 어떤 문제가 오고 시험, 환란이 찾아왔다면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 내가 아직 육체 가운데 있지는 않은가, 내가 어두움 가운데 살고 있지는 않은가,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6에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말씀한 대로 여러분이 진리 안에 빛 가운데 살지 않는다면 아무리 여러분 편에서는 "나도 하나님을 믿는데요." "나도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데요." 말해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에게 거짓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빛 가운데 살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함께해 주시며 반드시 축복을 주십니다. 때로 하나님께서 축복 주시기 위해 허락하신 연단의 과정 속에 있다 해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증거는 항상 따릅니다. 요셉이 바로 그러했지요. 요셉이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갔을 때를 보면 창세기 39:2-3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셉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옥에 갇혔을 때도 창세기 39:23에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했지요.

 

종으로 팔려가고 옥에 갇히는 연단의 과정 중에도 하나님께서는 항상 요셉과 함께해 주셨기에 범사에 형통함을 받을 수가 있었고 주변의 사람들도 누구나 그것을 인정했던 것입니다. 반면에 육체가 된 사람과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함께하지 않으시니 형통함을 입을 수도 없고 축복을 받을 수도 없으며 하나님과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3.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육체가 된 사람들을 향해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일백이십 년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당시에 사람의 딸들을 보고 정욕에 이끌려 그들을 아내로 삼았던 에덴 동산의 사람들은 이 땅에 정착해서 산 것이 아니라 에덴 동산과 이 땅을 오고 가며 살았다 했는데 하나님께서 이처럼 그들의 날을 일백이십 년으로 정하신 후로 그들은 다시 둘째 하늘로 올라갈 수가 없게 됩니다.

 

더 이상 이 땅과 에덴 동산을 오고 가며 이 땅과 영계의 질서를 어그러뜨리지 못하도록 바로 잡으신 것이지요. 그리고 이들도 이 땅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육의 사람들이 되어 한정된 수명을 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육체가 되어 버린 이 땅의 사람들 역시 수명이 급격하게 단축되는 것을 볼 수가 있지요. 구백 살이 넘던 수명이 단 번에 일백이십 년으로 된 것은 아니지만 노아 홍수 이후로 꾸준히 감소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일백이십 년이라는 숫자가 꼭 사람들의 수명을 한정짓는 숫자가 아닙니다. 다시 말해 앞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꼭 일백이십 살만 살게 된다는 뜻은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일백이십 년을 말씀하신 것일까요? 여기에는 영적인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일백이십이라는 숫자는 빛의 수인 12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빛과 어둠을 가른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즉 어두움인 육체에 거하는 사람들을 빛과 분리하여 갈라낸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육체가 되어 어두움이 되어 버린 사람들로 하여금 이제 더 이상 빛의 영역으로 들어올 수 없도록 선을 그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육에 물들어 버린 에덴 동산의 사람들이 다시는 빛의 영역인 에덴 동산으로 돌아갈 수가 없게 되었지요.
  

 다음으로 일백이십 년에 담긴 또 하나의 의미는 앞으로 육체의 사람들에게 허락된 시간을 뜻합니다. 이 땅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러한 말씀 선포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악에 물들어 가게 되었지요. 그러다가 사람들의 악이 극에 달하는 시점에 이르러 마침내 홍수의 심판이 있게 됩니다.

 

그때까지는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참으시는 것이지요. 지금 그때까지 남은 시간이 앞으로 일백이십 년이 될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물론 이때도 꼭 정확하게 일백이십 년 후에 홍수의 심판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심판에 이를 만큼의 악이 차기까지 유예 기간을 선포하고 계시다는 뜻이지요.
   

성경에는 이처럼 유예 기간을 두시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장차 그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창세기 15:16에 "네 자손은 사 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하시지요.

 

앞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은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될 텐데 그때가 4대 후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시면서 그 이유가 바로 아직은 가나안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을 멸해 버리실 만큼 그들의 죄가 관영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셨지요.
   

일백이십 년도 이와 같은 경우로서 장차 홍수의 심판이 분명히 있겠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아직 기회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일차적인 경고를 무시한 채 사람들은 여전히 죄악 가운데 살다가 결국 홍수의 심판을 맞게 되고 말았지요. 아직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 당시의 사람들이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켰다면 아마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4. 네피림, 용사, 고대에 유명한 사람
   
   그러면 본문 4절에 네피림, 용사,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라는 말들이 나오는데 왜 이런 단어들이 나오게 된 것일까요? 당시 이 땅에는 서로 다른 이유에서 이 땅에 내려온 에덴 동산의 사람들이 있었다 했습니다. 이 땅의 삶을 동경하여 내려와 정착한 사람과 정욕에 이끌려 이 땅에 내려온 사람들이지요.
   

그 중에서 이 땅의 삶을 동경하여 이 땅에 완전히 정착했던 에덴 동산의 사람들의 후예가 바로 '네피림'이라 했는데 이들은 외모가 매우 출중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의 기를 타고 태어났기에 이 땅의 보통 사람들과는 달랐던 것입니다. 더욱이 네피림은 아직 육에 물들지 않은 하나님의 아들들에 의한 후손이었기에 그만큼 에덴 동산의 사람들이 가진 뛰어난 면을 그들도 많이 가지고 있었지요.
   

이러한 네피림과는 달리 정욕에 이끌려 이 땅에 내려와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취했던 에덴 동산 사람들의 후예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도 기본적으로는 에덴 동산의 사람들의 기를 받고 태어났기에 보통 사람들보다는 훨씬 뛰어나게 태어났지요.

 

이들은 어디에 살든 눈에 띄었고 보통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존재로 보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네피림이든 그렇지 않든 에덴 동산의 기를 받고 태어난 사람들은 자연히 보통 사람들과는 구분이 되어졌지요. 이들은 당시 사람들 사이에 용사처럼 보여졌고 유명한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는 바로 이러한 사람들을 가리켜 '용사'라 '고대의 유명한 사람'이라 표현하고 있지요.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들이 낳은 출중한 후예들이 계속해서 몇 대에 걸쳐 이어진 것은 아닙니다. 만약 이들이 계속해서 번성했다면 아마 이 땅은 에덴 동산의 사람들의 후예에 의해 정복되고 다스려지는 세상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겨우 한 세대가 지나면서 끊어지고 맙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들 역시 육에 물들어 갔기 때문이지요. 그들 안에 죄가 들어오고 육에 물들어 가면서 그들도 결국은 육체의 사람이 되고 말지요. 그리고 이처럼 육체의 사람이 되어 버리자 이제 그들의 기 안에 더 이상 하나님의 아들들에게서 이어받았던 뛰어난 외모나 능력은 남아 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바로 다음 세대부터는 이 땅의 육의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들이 태어나게 됩니다. 생령이었던 아담과 하와가 육의 사람이 되어 이 땅으로 쫓겨 내려온 후로는 그들이 낳은 후손도 육의 사람인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들이 이 땅에 낳은 후예들 역시 죄 가운데 빠져 육체의 사람이 되자 더 이상은 뛰어난 후손이 태어날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용사라 불리던 사람들이 그 후에도 계속해서 있었던 것이 아니며 후세 사람들에게 이들은 고대의 유명한 사람으로서 기억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전해 내려왔던 거예요. 그나마 시간이 더 지남에 따라 사람들 사이에서 전설적인 인물들로 기억될 뿐이지요. 
   
   5. 죄악의 관영함과 심판
   
   이처럼 당시의 상황은 사람들이 빠르게 악으로 치달아 가고 있는 상황이었고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시면서 하나님께서는 한탄하시며 근심하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땅에 대심판이 있을 것을 말씀하시는데 바로 창6: 5-7절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렇다면 당시에 얼마나 죄악이 관영했던 것일까요?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아도 어떤 문명이나 융성했던 제국이 멸망할 때를 보면 그들의 죄악이 극에 달했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특히 삶이 안정되고 부유해질수록 음란하고 음탕한 풍조가 만연하며 육적인 쾌락을 취하는 데만 빠졌던 것을 보게 되지요.

 

성경상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나 여러분이 잘 아시는 로마 제국의 폼페이가 그러했습니다. 이러한 문명의 마지막 시기에는 퇴폐적인 풍조와 도덕적 문란이 매우 심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가 있기 전의 상황도 바로 이와 비슷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못한 채 쾌락과 욕심과 허영과 사치가 난무했고 온갖 정욕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지요.

 

사람들은 이미 모든 생각과 마음까지도 원수 마귀 사단에게 빼앗긴 상태였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시면서 하나님께서는 한탄하실 수밖에 없으셨지요.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을 시작하신 것 자체를 후회하시거나 한탄하신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인간이 이제는 완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잃고 원수 마귀 사단의 종노릇을 하고 있으니 그것이 너무나 안타깝고 마음 아프셨던 것입니다.

 

거기다가 생령이었던 에덴 동산의 사람들 중에서도 정욕에 이끌려 죄로 물들어 가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시면서 마음에 크게 상심되셨던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노아라는 의인을 택하셔서 인간 경작의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어 가기로 계획하시고 노아와 그 가족을 제외한 이 땅의 모든 사람은 홍수의 심판을 통해 멸해 버리시기로 작정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홍수의 심판을 통해 사람뿐이 아니라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도 함께 심판하시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2010-05-26 03:18 | 출처 : 본인작성

카라(luc****) | 답변 4585 | 채택률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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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홍수 전 노아 시대의 사람들에 대한 여호와의 불쾌감을 묘사하는 성서 기록에서는 “참 하느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매력적인 딸들 가운데서 자기들을 위해 아내들을 취했다고 알려 준다. 그다음에 “네피림”의 존재에 관해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 날에 네피림이 땅에 있었고 그 후에도 있었으니, 그때에 참 하느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계속 관계를 가졌고 이 딸들이 그들에게 아들들을 낳았는데, 이들은 옛적의 용사들[히브리어, 학깁보림], 유명한 사람들이었다.”—창 6:1-4.

정체 성서 주석가들이 4절을 고려하여 이들 네피림의 정체에 관해 제시하는 의견은 몇 가지가 있다. 어떤 학자들은 그 이름의 파생 과정을 볼 때 네피림이 ‘타락한 천사들’ 즉 죄지은 천사들임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또 어떤 사람들은 대단한 추리 방식을 사용하여, 네피림이라는 명칭은 그들이 ‘하늘에서 떨어졌음’을 알려 주는 말로서 이것은 그들이 ‘천적인 존재에 의해 태어났다’는 의미라고 결론짓는다. 그런가 하면 “그 후에도 있었으니”라는 표현(4절)에 주로 초점을 맞춘 다른 학자들은, “그 날에” 즉 하느님의 아들들이 여자들과 관계를 갖기 전에 네피림이 “땅에 있었”기 때문에, 네피림은 ‘타락한 천사들’이나 “용사들”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이렇게 주장하는 학자들은 네피림이란 단지 카인과 같은 악인들—홍수로 멸망될 때까지 땅을 배회했던 강도들, 불량배들, 압제자들—이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또 다른 그룹은 네피림이라는 이름의 의미뿐 아니라 4절의 문맥도 고려하여, 네피림이란 천사들이 아니라 물질화한 천사들이 사람의 딸들과 관계를 가진 결과로 태어난 잡종 자녀라는 결론을 내린다.

깁보림”과 동일한 것 어떤 성서 번역판들은 “그 후에도 있었으니”라는 구의 위치를 조정하여 4절 서두 부근에 둠으로, 네피림을 4절 후반부에 언급된 “용사들” 즉 깁보림과 동일시한다. 예를 들면 이러하다. “그 날에, 그리고 그 후에도, 거인들[히브리어, 한네필림]이 땅에 있었으니, 그들은 신들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관계를 가졌을 때 태어난 자들이었다. 이들은 영웅들[히브리어, 학깁보림]이었으며 옛 시대에 잘 알려진 사람들이었다.”—창 6:4

그리스어 「칠십인역」도 “네피림”과 “용사들”이라는 두 표현을 같은 단어 기간테스(거인들)로 번역함으로, 그 두 표현이 동일한 것을 나타내는 표현임을 시사한다.

   그 기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1절부터 3절에는 “참 하느님의 아들들”이 아내들을 취하는 내용이 나오고 여호와께서 인간에 대한 참으심을 120년 후에 끝내시겠다고 말씀하시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고 나서 4절에서 “그 날에” 즉 여호와께서 그 말씀을 하신 것으로 생각되는 그 시대에 네피림이 땅에 있었다고 알려 준다. 그다음에 그 성구는 그러한 상태가 “그 후에도” 계속되고, “그때에 참 하느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계속 관계를 가졌”다고 알려 주며, “참 하느님의 아들들”이 여자들과 결합한 결과를 더 자세히 묘사한다.

네피림의 아버지들인 ‘하느님의 아들들’은 누구였는가?

이 기록에 나오는 “참 하느님의 아들들”은 누구였는가?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악한 일반 인류와는 달리) 여호와를 숭배하는 사람들이었는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성서 내용을 보면 그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한 결과로 땅에 악이 만연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하느님의 은혜를 입어서 대홍수를 살아남도록 보존된 사람들은 노아와 그의 세 아들 그리고 그들의 아내들뿐이었다.—창 6:9; 8:15, 16; 베첫 3:20.

  따라서 이들 “참 하느님의 아들들”이 단지 사람에 불과했다면, 이러한 질문이 생긴다. ‘그들의 자녀들이 악인들의 자손들이나 충실한 노아의 자녀들보다 더 “유명한 사람들”이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또한, ‘그들이 사람들의 딸들과 결혼한 일을 특별한 일로 언급한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도 생길 것이다. 결혼과 자녀 출산은 이미 1500년 이상 계속되어 온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6:2에 언급된 하느님의 아들들은 천사들, 즉 영자(靈子)들인 “하느님의 아들들”이었음에 틀림없다. 욥 1:6과 38:7에서는 이 표현을 천사들에게 적용한다. 베드로도 이 견해를 지지하는데, 그는 “감옥에 있는 영들” 즉 “과거 노아의 날에 ··· 하느님께서 참고 기다리실 때에 불순종하던 자들”에 관해 말하기 때문이다. (베첫 3:19, 20) 유다 역시 “자기의 본래 위치를 지키지 않고 자기의 적절한 처소를 버린 천사들”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 (유 6) 천사들은 인간의 형태로 물질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는데, 하느님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물질화한 천사들도 있었다. (창 18:1, 2, 8, 20-22; 19:1-11; 수 5:13-15) 하지만 영적 인격체들의 적절한 처소는 하늘이며, 그곳에서 천사들은 여호와 밑에서 여러 위치에서 봉사하고 있다. (단 7:9, 10) 이 처소를 버리고 땅에서 사는 것과 육적인 관계를 갖기 위해 자기들의 봉사의 임무를 저버리는 것은, 하느님의 법에 대한 반역이자 도착 행위였다.

  성서는 불순종한 천사들이 이제는 “감옥에 있는 영들”이 되어 ‘타르타로스에 던져져 큰 날의 심판을 위하여 영원한 결박으로 짙은 어둠 아래 보존’되어 있다고 알려 준다. 이것은 그들이 큰 제약을 받고 있어서 다시는 대홍수 전처럼 물질화하지 못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 같다.—베첫 3:19; 베둘 2:4; 유 6.

악이 증가하다 그 결혼으로 태어난 “옛적의 용사들, 유명한 사람들”은 하느님에게는 유명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노아와 그의 가족처럼 대홍수를 살아남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네피림”, 불량배들, 압제자들로서, 의심의 여지 없이 상태가 악화되도록 부채질했을 것이다. 인체의 구성을 알고 있어서 물질화할 수 있었던 그들의 천사 아버지들은 생명체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물질화한 인체로 살면서 여자들과 동거하여 자녀를 낳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자녀들 즉 “용사들”은 부당한 잡종 자녀였다. 네피림 대에 가서는 자녀가 없었던 것 같다.

신화 속에 이교도들의 많은 신화들은 네피림의 명성과 그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생겨난 것 같다. 이교도들은 바벨에서 언어가 혼잡해진 후에 온 땅에 흩어진 사람들이다. 창세기 기록의 역사 형태가 많이 왜곡되고 각색되기는 했지만, 이 고대 신화들(그리스 신화는 그 한 예일 뿐임)에는, 놀랄 만한 유사점이 있다. 이 신화들에는 신들과 여신들이 사람들과 동거하여 초인간적인 영웅들과 신인(神人)의 특징을 지닌 무시무시한 반신반인들을 낳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2010-05-26 15:48 | 출처 : 본인작성

이수일(dic***) | 답변 28 | 채택률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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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만 정리해드리겠습니다.

 

네피림은 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태초에 사람을 창조하실때 사람들은 혼만 있었습니다. (내세가 없는 존재지요. 죽으면 소멸)

혼적인 면에서 동물과 크게 다른 점은 이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어차피 게놈프로젝트의 유전자 지도에서도 동물과 사람과의 유전자 차이는 얼마되지 않습니다.

본능을 넘어선 이성 등등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각설하고..

네피림은 장부라고 다들 알고 있는데, 낙오자란 뜻이 있습니다.

영이 없는 사람들 입니다.

 

즉, 여기서 아담은 내세가 없는 존재에서 생령(아담)을 불어 넣음으로써 내세가 있는 존재가 되었지요.

나머지는 낙오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영을 집어 넣음으로써 사람에게 영이 존재하게 된것이예요.

이로 추정해보건데 아담은 사람의 자식이기에 배꼽은 있지만, 하와는 없을거라 추정합니다.

 

여기서 사람의 아들, 딸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딸들(아담, 하와의 자식들, 즉, 영이 있는 존재들)이 되지요

즉. 이때 영이 있는 존재(하나님의 아들딸들)과 영이 없는 존재(사람들의 아들딸들)이 만나서 생기는 자녀는 영이 없는 존재 입니다.

 

물론 아담의 죄로 인해서 그 첫 영은 죄로 죽었지만 유전이 됩니다. 인류는 첫 영인 아담의 영의 자손입니다.

70억의 인격체라고 봐야죠.

이후 예수님에게 접붙임 되어 사는 것입니다.

살리는 영이신 예수께서 오셨기에 우리가 산 영이 되었지요

 

헌데 왜? 하나님은 영을 하나만 만드실까요? 경건한 자손을 얻으시려고지요

[말2:15]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지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

 

그게 누구냐? 예수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를 못찾으면 성경이 연결되지 않습니다.

노아 홍수 사건은 영이 없는 네피림을 쓸어버리신 것입니다.

 

창세기부터 복음서까지 끝까지 통과해야 이해되실 내용들이오니, 성경 열심히 읽으세요.

QT로 드문드문 보는게 아니라. 계속해서 읽으셔야 됨니다.

개인적으로 QT는 삶의 적용을 찾는 것이지 정말 하나님의 의도를 아시려면 창세기 부터 계시록까지 계속 읽어셔야 됩니다.

읽으실때는 한 두장씩이 아니라 한 챕터, 한 이야기 식으로 크게 크게 읽으시구요

즉, 성경을 통째로 보셔야 된다는 말이예요

 

제 블로그의 내용이 구글검색할때 나오나? 검색하다가 이 글을보게 되어 답변을 조금 달아봤습니다.

참고 : 제블로그 참조하세요 (http://dice9.tistory.com/63

2010-08-23 11:34 | 출처 : 본인작성
  • 여호수아님 11.12.30

    너무나 정확한 영적인 말씀입니다 성경이 이렇게 풀어지지 못함에 안타까워 했는데 속이 후련한 간결하고도 명료합니다 감사하구요 더욱 더 여호와의 신으로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 신고

Neo Ariel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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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요지를 잘 모르겠음 2010-05-25 22:14 이 답변 자세히보기

rlaalstn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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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녀들과 육체뿐인 사람들 사이에서 난 자들입니다. 2010-05-27 17:41 이 답변 자세히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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